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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외환위기 경고한 ‘유일한’ 언론인 김영호 언론연대 대표
신학림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  mediashin@mediaus.co.kr 
 
 
11년 전 오늘은, 바로 며칠 전까지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YS정권의 고위관리들이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s: 실질적인 조건들)’은 괜찮다고 항변하다 벼랑 끝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한 날이다. 사실상 ‘국가부도’나 다름없는 위기를 인정한 날이다.
 

▲ 11월 21일자 경향신문 21면.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유사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있다.

우선 11년 전과 다른 점은 위기에 대한 판단의 시기와 인식의 정도다. 11년 전에는 많은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한국의 외환위기 도래를 예고하고 경고하는데도, 구제금융신청 계획 발표 며칠 전까지도 족벌언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이 ‘펀더멘털이 괜찮다’는 정부 관리들의 주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언론이 경제를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일부 국내외 언론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9월 위기’를 경고했는데도 조선, 중앙, 동아 등 족벌언론들은 애써 외면하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돌이켜보면, 9월 위기설은 그대로 현실화된 셈이다.

요새, 경제위기 상황을 족집게처럼 예측했던 다음 아고라의 ‘미네르바’씨가 정부 탄압을 견디다 못해(?) 절필을 선언한 것이 화제다.

11년 전은 요즘처럼 사이버 공간을 통한 소통이 활발하지 못하던 때라, 상황은 다소 달랐지만, 그 때도 ‘미네르바’처럼 외환위기를 경고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1997년 말 외환위기 발생 훨씬 전부터 위기를 경고한 거의 유일한 언론인이 김영호 당시 세계일보 논설위원(현 자유기고가,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이었다. 한국일보에서 1980년 해직된 뒤 모 국내 재벌 계열사에서 잠깐 근무하며 실물경제의 흐름까지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 김 대표는 세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11년 전의 '미네르바'였던 셈이다.

그는 지금도 활발한 기고활동과 시민운동을 통해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과 이 위기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져올 가공할 피해에 대해 목청을 높인다.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족벌언론의 보도태도

11년 전과 비교할 때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것은 조선, 중앙, 동아 등 이른바 족벌신문들의 보도태도다. 자신들만이 나라와 나라경제를 생각하는 것인 양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위기가 닥치거나 닥칠 조짐이 현저히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 분석은 소홀히 하거나 눈을 감는 듯한 태도는 그 엄청난 사태를 겪고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최근 들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두 족벌신문이 강만수 경제팀의 교체를 주장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부재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비판이 진정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국정수행 과정에서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 이명박 대통령더러 물러가고 새 판을 짜거나, 여야 모두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하자고 할 법도 한데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간다.

왜 그럴까?
기자가 보기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생존을 독자와 국민과 국가의 그것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해는 된다. 자신들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신문은 위기다. 오래 전부터 위기 속에서 간신히 버텨왔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도 예외는 아니다. 날로 떨어져가는 독자와 부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전체 매출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광고수입도 경기침체에 따라 급감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뾰족한 수단이 없는 것이다. 지상파 TV 방송, 종합편성채널(케이블) 방송과 보도전문채널을 포함하는 방송에 진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돌파구로 보이는데, 이에 관해 2MB 정부와 한나라당 정권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형국에 처한 꼴이다.

국민들 중 잘사는 1% 계층만을 위하는 ‘강부자 내각’으로 표현되는 2MB 정권의 실체가 드러난 데다 위기관리 능력 부재까지 겹친 상황에서 비판을 안할 수는 없고, 비판을 제대로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더러 ‘물러나라’고 해야 할 판인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 그동안 방송에 진출하기 위해 2MB 정권에 들인 ‘공든 탑이 무너지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딜레마

아무튼, 조선, 중앙 등은 진퇴양난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을 팔아먹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2MB 정권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을 때 2MB 정권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신들에게 화살이 날아 올 것에 대비해, 그렇지 않았다는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도 만들어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11년 전 외환위기 사태 때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위기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이 위기가 가난한 서민들과 주식과 펀드 투자자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만들지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혹은 예상되는 그대로 보도하면 2MB 정권의 눈에 나게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경제위기와 관련, 족벌언론을 비롯한 우리 언론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우리 언론은 1997년 외환위기와 다가온 경제위기의 공범인가, 주범인가?

이와 관련해,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약칭 미디어행동)은 20일(목) 11년 전의 상황을 생각하며 ‘위기의 경제, 언론도 공범이 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사 강당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 지정토론자들과 참석자들 중에는 언론이 경제위기의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고, 우리 족벌언론에게 위기의 본질과 구조를 제대로 분석할 의지와 능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있다는 취지의 지적도 있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족벌언론들의 보도태도를 보면 여전히 자신들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1년 외환위기 때는 우리 족벌언론들이 그런 태도로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통할까?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보도하면, 이명박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온, 본격적인 방송진출 꿈이 날아 갈 것이 뻔하고, 이래저래 족벌언론들도 고민이 말이 아닐 것 같다.
 

Posted by 신학림



방송장악, 이명박과 조중동의 핵심 연결고리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  mediashin@mediaus.co.kr 
 
 
이명박 취임 100일 전후 조선일보의 ‘속보이는’ 쓴소리
 
보수세력과 이명박 정권의 ‘후견인’ 내지 ‘기관지’ 같은 역할을 하던 조선일보가 상상을 초월하는 촛불시위의 위력 앞에 입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변화’ 같지는 않다.

이명박 취임 100일을 전후해 조선일보의 주요 논설위원들과 칼럼니스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명박 정권의 대선 승리 이후의 문제점과 국정운영 실패 사례들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울지 모른다.

이런 글들을 읽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들은 어떻게 반응할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조선일보를 이명박 정권에 진정으로 애정을 가진 수호자처럼 느낄까?

조선일보 특유의 ‘신문 팔아먹는 기술’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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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6월3일자 사설.


 
기자가 보기에 조선일보의 최근 며칠 사이 달라진 겉모습은 “신문을 팔아먹는, 또 앞으로 팔아먹기 위한 특유의 기술 발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선일보는 신문을 팔아먹는 기술 하나는 아주 뛰어나다. 물론 여기서 ‘신문을 팔아 먹는다’는 의미는 일선 지국이나 확장 요원들의 판촉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사나 콘텐츠의 생산과 편집과정에서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그때 그때 순발력있게 조절을 잘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구체적으로는 1면 머리기사의 선택을 포함한 기사의 지면 배치, 편집(lay-out or editing), 그리고 사설과 칼럼을 통한 주장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일과 기술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신문과 매체에서 필요한 것이고 일상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조선일보만 문제인가 반문하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조선일보는 유달리 이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독재 권력을 포함한 정치권력과 오랜 세월 동안 밀월 혹은 유착관계로 지내다가도 그 정권이 국민의 저항 앞에 위기에 내몰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가차없이 '두들겨 패는' 것이 조선일보의 주특기다.

조선일보 스스로 그런 행태를 염두에 두거나 지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할 말은 하는 신문’이란다.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

애초에 국민과 서민대중의 이익보다는 자기회사 사주와 회사의 이익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순위에 놓으면서도, 마치 자신들만이 정론인 것처럼 해 온 것이 조선일보다. 그런 ‘웃기는 행태’를 가장 극명하게 그리고 뻔뻔하게 보여주는 것이 회사 광고 전광판에 버젓이 등장하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이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 : 조선일보, 할 말은 하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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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5월30일자 10면.


문제는 조선일보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비웃고 있든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일보 기자들은 입사 후 몇 년만 지나도 ‘확신범’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확신범처럼 보이기 위해 철저히, 사시(社是)처럼 보이는 조선일보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행태를 온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조선일보 안에서 살아남아 승진과 출세를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조선일보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전후해  조선일보가 보이고 있는 ‘작은 변화’를 분석하고 추이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을 대했던 것과 달리, 노무현 정권에게 했던 것처럼, 보다 전면적이고 집요하고 철저하게 비판을 겸한, 혹은 비판으로 위장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조선, 신문·방송 교차소유 무산 가능성 높으면 이명박 철저히 공격할 것

그 예측과 해답의 열쇠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쥐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최시중 위원장이 쥐고 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놀랄 것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달 중순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를 위해 마련한 초안 자료(한겨레신문 6월3일자 9쪽 보도 참조)가 생생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관련 기사 제목을 보자. “KBS2·MBC 민영화 가능성 커져”란 제목의 기사는 “방통위는 지상파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의 기준을 현행 자산총액 3조원 미만에서 10조원 미만으로 크게 완화할 방침이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허용 방침을 추가하면 된다. 여기에 모든 열쇠가 들어있다.

이명박 정권이 공영방송과 방송의 공공성을 사수하려는 방송 현업인들과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의 저항도 무시하고 쇠고기 수입 문제처럼 신문과 지상파 방송 혹은 종합편성PP의 진츨 허용을 밀어부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지상파)방송 장악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 때문에 '하자와 비리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힌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처럼 저항이 예상외로 강해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PP 허용 구상 자체를 보류하거나 연기해 다시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저항이 예상보다는 약하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우회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이 오면, 조중동 등 재력이 있는 신문사들이 직접 주도권을 가지고 지상파 방송 혹은 종합편성PP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중소기업 혹은 대기업과의 컨소시엄 등을 통해 물타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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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5월27일자 3면.


    
이명박 정권, 차라리 조중동을 버리는 것이 국정에 도움될 것

이런 모든 상황들을 검토한 뒤,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PP 사업 등이 완전히 물건너 갔다고 판단하는 순간부터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거나, 국민들의 퇴진 요구가 빗발칠 경우, 보수 혹은 수구 언론사 중에서 가장 먼저 이명박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일보 사주와 경영진을 비롯한 수뇌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5년 내내 죽을 쑤는 바람에 5년 뒤에 개혁세력에 정권을 다시 내주는 것 보다는, 이명박을 퇴임시키고 대통령 보궐선거를 실시해도 지금의 야당들의 지지도 등에 비추어 볼 때 한나라당 후보가 다시 승리할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계산을 할 수 있는 신문사가 조선일보다. 아니 그런 식으로 계산해 가며 정권과 밀착 혹은 이속 챙기기를 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기관지나 참모 같은 역할을 자처하는 듯한 보도가 촛불시위 사태에 대응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럴 가능성이 낮지만, 정말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제대로 이끌고 싶다면, 차라리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을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촛불혁명, 조중동에 방송 허용 절대 안되는 이유 증명  

이와 별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려있는 ‘공영방송과 방송의 공공성 지키기 투쟁’이 촛불문화제와 같은 ‘정부를 상대로 하는 혁명적인 소비자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정국을 관측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번 촛불문화제와 촛불시위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오로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족벌신문들이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 PP 같은 방송 사업에 진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또한 기자가 촛불문화제에 놀라고,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방송현업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바깥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지 못하는지, 임기가 보장된 사장을 앞장서서 내쫓는데 혈안이 돼 있는 언론노조 KBS본부와 일부 간부들이 딱할 뿐이다.
 

Posted by 신학림



창간 20주년을 맞는 한겨레신문에 보내는 글
미디어스 신학림 기자  mediashin@mediaus.co.kr 
 
 
기업으로서의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

오늘(15일)은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이다. 이 땅의 모든 민중, 독자 그리고 6만명의 주주들과 함께 진심으로 창간 20주년을 축하한다.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을 이틀 앞둔 13일에는 한국언론학회(회장 권혁남 전북대 교수)가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이란 제목으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한겨레신문이란 창문을 통해 한국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차분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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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학회 주최와 한겨레신문 후원으로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 심포지엄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됐다. ⓒ송선영


잘 짜여진 세 명의 언론학 교수의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깊이 있는 발제와 분석 및 전망에 이어 중견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언론학자 그리고 현직 기자 등이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알찬 토론을 벌였다.

20층 국제회의장을 메운 방청석의 열기도 뜨거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방청객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었고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한겨레신문이 우리 사회가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대를 넘어 민주화로 나아가는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20년 전 창간 당시의 발행 목적과 창간 정신 등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와 한국 언론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으로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였다. 이것은 지난 20년 동안에도 한겨레신문 안팎에서 고민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고급 정론지’와 ‘진보적 대중지’ 중 어느 것을 지향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발제자와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약간씩 의견이 달랐다.

언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각각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든 ‘고급 정론지냐, 진보적 대중지’냐가 의미있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또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적정한 부수가 몇 십만부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한겨레신문의 생존과 관련한 이 논쟁에 대해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다소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한겨레신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신문 시장과 신문 업계 전체의 처참한 현실이 그런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날 토론회의 촛점이 한겨레신문의 기사 즉 결과물(소프트웨어 혹은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의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하드웨어 혹은 하부구조) 등에 관해서는 살펴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한겨레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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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5월 8일자 33면


왜, 대도시에서 조차 변두리에서는 한겨레신문을 보기 어려울까?

기자는 고양시에서도 파주시와 바로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에 있는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집에는 한겨레신문 1부와 동아일보 2부가 들어오고 있었다. 경향신문은 사무실에서 보고 있다. 14일에 이어 오늘(15일) 아침에도 한겨레신문은 배달되지 않았다.

여기에 한겨레신문이 처한 현실과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구조적 모순과 독점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한겨레신문의 생존조건과도 맞닿아 있다.

동아일보를 1년 6개월 이상 구독하다가 3일 전에 구독정지를 통보했다. 그 다음날부터 동아일보는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 덩달아 한겨레신문까지 배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를 같은 지국에서 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 신문시장의 현실이다.
구독시장은 물론이고, 광고, 판매 및 배달시장까지 조선, 동아, 중앙 등 이른바 족벌신문들이 고스란히 장악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족벌신문들의 일부 지국에서는 일부러 같이 배달하고 있는 다른 부수가 작은 신문들을 일부러 배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서 사정도 모르고 결배에 화가 난 독자들에게 현금이나 상품권 제공과 무료구독기간 6개월 이상 제공을 전제로 신문을 바꾸라고 제의한다.

2년 동안, 조중동 세 신문에서 13번의 상품권과 현금 받아

동아일보는 왜 2부를 구독하게 됐는가? 지난 2년 동안 기자가 사는 집에서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세 신문으로부터 무려 13번의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13번 구독계약을 체결했다. 그 중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것이 3번이다. 3번 계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국에서 계약을 지키지 않고 신문을 2부만 배달해 왔다. 왜 3부를 전부 배달해 주지 않느냐고 지국에 물으니, 본사에서 한 집에 2부 이상은 배달하지 말라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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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학회 주최와 한겨레신문 후원으로 '한겨레와 한국사회 20년' 심포지엄이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개최됐다. ⓒ송선영



동아일보는 2부라도 배달해 주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다. 조선과 중앙은 아예 배달 자체를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각각 5번의 계약을 체결했다. 기자의 신분이 알려진 이후 본사에서 지국에 기자의 집에는 무조건 신문을 배달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과 중앙은 계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조선과 중앙일보를 상대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토 중이다.

조중동으로부터 13번의 경품을 제공받고 이 중 2건을 신고해 포상금 243만원을 받았다. 나머지 경품은 한꺼번에 신고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신문의 첫번째 생존조건과 장애물이 등장한다. 가설이라고 해도 좋다. 신문이란 상품이 좋으면, 즉 양질의 기사와 컨텐츠만 생산하면 신문이 팔리는가?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을 많이 볼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

한겨레신문의 최고경영진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 잘못된 가설에 근거해 경영해 왔다. 이것이 한겨레신문의 경영 위기의 첫 번째 이유다. 한겨레신문 경영 위기의 주요 원인이 컨텐츠에 있지 않다는 얘기다.

부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

두 번째 잘못된 가설. ‘신문 부수만 늘어나면 무조건 매출이 늘고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이다. 2-3년 동안 장기적으로 꾸준히 신문 부수가 늘어나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부수가 갑자기 늘어난다고 해서 매출이 바로 늘어나지 않는다. 종이값 등 제작비용만 늘어나고 광고수입 등은 부수가 늘어난 것과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하면 유동성 위기만 초래할 수 있다.

왜? 신문 부수가 늘어나면 구독료 수입이 대폭 늘어야 하는데 신문구독료가 제조원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신문이 많이 팔릴수록 손해가 날 수 있다. 그러면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은 왜 부수 늘리기에 집착하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신문을 찍을 돈이 있고, 둘째는 신문을 많이 뿌리고 대기업과 재벌 광고를 ‘독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에 의한 신문 구독, 배달 및 광고 시장의 독점과 제조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구독료, 이 두가지 때문에 한겨레신문은 세 번째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전체 매출액 중에서 광고 수입과 구독료 수입의 비중이 97-98년 IMF 외환위기 전에는 ‘8: 2’이던 것이 지금은 9:1이 됐다.

불법 판촉 행위 근절 못하면 한겨레신문의 미래는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겨레신문은 근본적으로 경영난을 타개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겨레 경영진은 신문 경영의 하부구조인 시장 정상화, 즉 조중동 등 족벌신문들의 불법 판촉행위 등에 대해 전면적이고 집요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많은 민중들을 감동시켰던 20년 전 창간 정신만으로 한겨레신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기자가 보기에 한겨레신문의 컨텐츠는 경쟁력이 있다.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신문시장에서 조중동 등 부자신문들의 약탈적인 불법 판촉행위를 바로잡지 못하면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부수가 작은 신문들의 미래는 없다.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이 되는 날에 독자로서 마냥 축하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년 뒤에 한겨레신문이 창간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질 수 있을 지 걱정이다.

Posted by 신학림